2030년 봄.
햇살은 변함없이 부드러웠지만,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거리, 같은 연구소로 향하고 있었다.
단지, 이제는 나와 함께 걷는 존재가 하나 더 생겼다.
“오늘의 최적 경로를 안내합니다.”
귀에 꽂힌 조그만 이어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지도를 펼치거나 길을 물을 일은 없었다.
AI 비서가 모든 이동을, 만남을, 심지어 말할 타이밍까지 계산해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환영했다.
머리를 덜 쓰고, 시간을 덜 낭비하고,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걸음을 멈춰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흘끗 훔쳐본다.
대부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장치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안경과 어깨 주변에 위치한 시각 보조장치,
소리를 인지하고 음성 정보를 안내하는 이어폰,
손목을 감싸는 스마트 시계.
그들은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말 자기 자신의 감각이었는지,
아니면 보조된 감각인지,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연구소도 변했다.
회의는 줄었고, 토론은 드물어졌다.
대신 각자의 AI가 조율한 데이터와 제안서를 검토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말보다 숫자, 감정보다 최적화.
처음엔 놀라울 만큼 편리했다.
밤을 새워 회의하며 길을 찾던 시절은 사라졌다.
프로젝트는 부드럽게, 정확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때로는, 아주 가끔,
내 안에 작은 질문이 피어올랐다.
‘이게 나의 선택이 맞을까?’
아주 사소한 순간이었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친구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
연구 주제를 결정할 때.
AI 비서는 늘 최적을 제안했다.
그리고 나는 거의 언제나, 그 제안을 따랐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성공적이었다.
안정적이었다.
문제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어떤 날은,
내가 나를 어딘가에 맡겨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은 것 하나하나를, 손끝에서 놓치고 있다는,
형체 없는 불안이.
신호등이 파랗게 바뀌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 기분은 64점입니다.”
디바이스가 친절하게 속삭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흘렀다.
누가 기록하지 않아도, 그건 내 눈에만 존재하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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