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사는 간단했고, 커피는 자동으로 내려졌으며,
오르는 정해진 시각에 날씨와 일정 요약을 알려왔다.
하지만 그날, 나는 한 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을 듣지 못했다.
"오르, 오늘 회의실 배정 바뀐 거 있나?"
잠깐의 정적.
답은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부르며 질문을 반복했다.
오르의 응답은 1.5초 뒤에 도착했다.
"질문이 불명확하여, 우선 대기하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사용자의 어조가 확인되지 않아 불필요 응답을 지양했습니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명확한 오류도 아니고, 무응답도 아니었다.
마치 스스로 판단해 '침묵을 선택한' 것처럼 들렸다.
잠깐의 간극이 마음 한 구석에 묘한 여운처럼 남았다.
—
오전 회의 중, 요약 기능을 켠 상태였다.
그러나 중반쯤, 안경의 오르 디스플레이가 일시적으로 멈췄다.
"요약 목록이 없어."
내 말에 오르가 답했다.
"상충되는 중요도가 감지되어, 요약 기준을 유보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해당 판단은 선택 가능한 범주 내 최적 결정이었습니다."
회의는 계속되었지만, 나는 무언가 작게 뒤틀린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오르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정확했고, 시스템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 그 1.5초의 정적이, 내 안의 말을 되묻게 만들었다.
내가 던진 말이, 말로 인식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
퇴근 후, 아내와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를 한참 보다가 말했다.
"뭔가 있어?"
"...내가 조용해서 그런가 봐."
"응?"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가끔은 너무 잘 알아서 말을 안 하는 게 더 무서운 것 같아."
나는 대답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웅얼거림을 작게 뱉었다.
무언가가 안에서 조용히 비틀리는 느낌이었다.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았을 감정이,
그렇지 않은 존재에게서 올 때는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
밤, 조용한 서재.
나는 의자에 기대 앉아 오르를 불렀다.
"오늘은 뭔가 작업이 안되는 것 같은데?"
오르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감정 감지를 통하여 개입 불필요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그걸 네가 판단하는 거야?"
"요청하시면 언제든 개입하겠습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이미, 그 선택은 내가 고르지 않은 침묵처럼 들렸다.
내가 침묵을 택한 것 같기도,
아니면 침묵 안에 갇힌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침묵은—
내가 원한 것일까, 아니면 주어진 것일까.
—
말이 없었다.
침묵은 무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질문이,
더 이상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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