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장 - 최적의 자리
대구행 열차는 정시 도착했다.
역에서 예식장까지는 택시로 20분 거리.
도로는 덜 막혔고, 햇볕은 강하지 않았다.
오르는 동행처럼 말했다.
“목적지는 현재 지능형 연결 우회 중입니다.
서비스 품질 저하가 예상됩니다.
복귀일정은 16시 40분 KTX로 예약되어 있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건물들 외벽이 지나갔다.
—
예식장은 오래된 지역 호텔의 별관에 있었다.
겉은 번들거렸고, 안은 붐볐다.
입구에서 숙모가 팔을 흔들었다.
“어이구, 너 진짜 왔네! 몇 년 만이냐?”
오르가 속삭였다.
“인물 정보를 새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나는 발을 멈추고 숙모를 다시 봤다.
“…숙모.”
숙모는 웃으며 내 팔을 툭 쳤다.
“그래야지. 안 그래도 형님이 너 얘기하시더라.”
오르는 조용해졌다.
—
사촌 동생은 결혼식 내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신부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둘 사이엔 아직 어색한 말투와 조심스러운 눈빛이 맴돌았다.
하객들의 대화는 중첩됐고,
나는 친척들 외 익숙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식권은 QR코드 대신 손글씨였다.
식사는 특이할 것 없이 흘러갔다.
식사를 마칠 즈음, 숙모가 손짓했다.
“너 한마디 해봐. 형님이 너 말 잘한다고 그러시더라.”
오르의 발화 추천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이어셋을 눌러 음소거로 전환했다.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말 잘 안 해도, 서로 기다려주고, 잊어버려도 괜찮고…
그런 거 하면서 살면 좋을 것 같아요.”
두서없는 그 말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식장이 끝난 뒤,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숙모가 말했다.
“근처에 괜찮은 카페 있어. 우리 애들이 자주 가는 데야. 잠깐 들렀다 가자.”
누군가는 차 막힌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애들 데리고 갈 데 없으니 잘됐다며 따라나섰다.
해당 카페를 목적지로 검색하자, 오르가 조용히 반응했다.
“해당 카페는 리뷰 미달, 서비스 환경 평균 이하입니다.
귀가 일정상 경로 유지를 권장합니다.”
나는 오르의 반대와는 달리 말없이 따라 걸었다.
—
카페는 오래된 건물 1층이었다.
출입구 위 종은 낡았고, 유리문은 밀어야 열렸다.
자리는 제멋대로였고,
음료는 종이에 적어 주문했다.
직원은 혼자였고, 계산은 느렸다.
오르는 다시 속삭였다.
“음향 반사율 과다. 조도 불균형.
체류 권장 시간 18분 이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사촌은 케이크를 먹다가 나를 보고 웃었다.
“형, 이런 데 오랜만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 예전 같네.
오르는 여길 반대하더라고.”
“그게 뭐야?”
“내 AI 비서 이름.”
사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빵을 한 조각 더 집어 입에 넣었다.
“그래도 형 왔잖아.
나도 가끔은 말 잘 안들어.
그냥… 하고싶은대로 하고 싶을 때 있잖아.”
오르는 더는 조언하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조금 헷갈렸다.
지금 이 선택이 좋았는지, 나쁜지, 스스로의 기준이 없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
커피는 묽었고,
컵은 가벼웠고,
의자는 삐걱였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평화로웠고,
오랜만의 친척간 소통과
그 나긋함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커피를 다 마신 뒤
한쪽 귀의 이어셋을 천천히 빼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더 이상 오르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신호였다.
오르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최적이 아닌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