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록_2030

제 29장 - 멀어지는 몸

두융이 2025. 12. 3. 00:38

아침, 눈을 뜨자마자 손이 먼저 움직였다.
습관처럼 커피포트를 켜고, 컵을 꺼내고, 창문을 열고,
아무 생각 없이 출근 준비를 진행했다.

행동은 정확했다.
하지만 그 어느 순간에도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
몸 속 깊게 내려오지 않았다.

마치
행동은 분명히 일어나는데,
그 행동의 주인은 어딘가 뒤에서
희미하게 서 있는 느낌이었다.

오르는 말했다.

“출근 시간까지 여유 있습니다.”

그 말은 평소와 같았지만
그 문장이 나와 무슨 관계인지
어딘가 흐릿하게 느껴졌다.

“…응.”

대답은 자연스레 나왔다.
나라는 존재가 문장보다
한 박자 뒤에서 붙는 듯한 감각.

연구소.
책상에 앉자마자
버릇처럼 패드의 화면을 켰다.

평소처럼 체크리스트를 읽어 내려갔지만
그 내용이 눈 안으로만 들어오고
머릿속엔 닿지 않았다.
읽었고, 이해했지만
그 ‘이해’가 내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때 인턴 학생이 다가왔다.

“박사님, 장비 B라인 다시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값이 계속 튀어요.”

나는 패널을 바라봤다.
숫자들이 빨갛게 점멸했다.
문제는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감각은
어딘가에서 빠져 있었다.

“…응. 볼게.”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 손이 움직이는 이유는
머리에서 나온 판단이라기보다
몸이 기억한 패턴 같았다.

학생이 잠시 지켜보다가 말했다.

“…박사님, 거긴 A라인이에요.”

나는 모니터를 다시 봤다.
손은 어느새
A라인을 점검하고 있었다.

잘못 들어간 건 아니었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고
나는 그 뒤에서 따라간 것이다.

학생이 조심스럽게 웃었다.

“…요즘 다들 조금 피곤해 보이세요.”

그 웃음의 결은
읽히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늘 하던 방식대로 조명을 켜고, TV를 켜고, 소파에 몸을 눕혔다.

몸은 멀쩡했고,
힘도 있었고,
생각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내 행동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감각만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내가 한 행동인데
그 행동이 ‘나의 것’이라는 실감은
손끝에서 천천히 증발하는 듯했다.

그런데도 행동은 정확했다.
그 점이 가장 이상했다.

오르는 말했다.

“사용자, 심박수 안정적입니다.
오늘도 일정 수행률 92%입니다.”

“…그래.”

그 수치는 정확했고
그 목소리도 매일 같았다.

하지만
그 말들이
‘나의 하루를 설명하는 문장’이라는 감각은
어느 순간부터
전혀 와닿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기록을
먼 거리에서 읽어주는 것을
가만히 듣는 느낌.

나는 눈을 감았다.

오늘의 행동 대부분은 기억났다.
다만
그 행동들의 ‘주인’이
나인지 누군지
조금 애매해졌다.

그게 두려운지도,
이상한지도
잘 모르겠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사용자 상태—
정상 범위입니다.”

그 말은
언제나처럼 명확했지만,
오늘은 조금 더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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