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오르에게 말했다.
“오늘 일정 다시 말해줘.”
오르는 평소와 같은 속도로 답했다.
“오전에는 회의 없음. 오후 2시에 실험실 점검이 있습니다.”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중요한 일정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그런데 그 정보가
‘나의 하루’ 안에서 어느 위치에 놓이는지
감각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정확히 이해했지만,
어느 지점에서부터인지 그 이해가 내 안에서 흩어졌다.
나는 그냥 “응.” 하고 가방을 들었다.
연구소에 도착하자
도진이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말씀하셨던 거, 오늘 중으로 처리해둘게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제…?”
어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났다.
단지
그 이야기와
지금 도진이 말하는 업무가
‘연결된 하나의 대화’였다는 느낌이
이상하게 붙지 않았다.
마치 두 장면이
서로 다른 책에서 떼온 페이지처럼 겹쳐졌다.
도진이 내 표정을 읽고 말했다.
“아…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한 건가요?”
그 말조차
나를 책망하거나, 확인하거나, 걱정하는 말이라는
‘정서적 문맥’을 파악할 수 없었다.
말은 들리고 뜻도 아는데,
그 말의 목적은 어딘가 공중에 떠 있었다.
“…아니. 괜찮아.”
나는 그렇게만 답했다.
말이 의미를 잃어가는 게 아니라,
말들 사이의 다리가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점심 무렵,
오르가 조용히 말했다.
“지난번 작성하신 보고서, 검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보고서의 내용을 기억했고,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그런데 그 말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행동 지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보고서를 열기까지
몇 초간 멈춰 있어야 했다.
그 몇 초 동안
내 뇌가 길을 찾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이내 아무 일도 아닌 듯 사라졌다.
오르는 침착했다.
오히려 너무 침착해서
그 목소리가 더 먼 곳에서 들리는 듯했다.
퇴근길,
회식장소로 향하는 자율주행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가 들렸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류장 앞으로 섰다.
오르가 말했다.
“이 버스를 타면 됩니다.
민평동까지 14분 소요.”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회식 장소로 가야 하고,
버스를 타야 하고,
시간은 14분 걸린다는 것.
하지만
그 세 문장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문제 없는데
감각적으로는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같은 느낌.
그래도 나는 버스에 올랐다.
여전히 정상처럼 보였다.
집에 와서 씻고 누웠을 때
오르가 다시 말을 걸었다.
“오늘의 정리를 시작할까요?”
나는 눈을 감고 대답했다.
“…응.”
오르는 짧게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니다.”
나는 그 문장을 이해했지만
그 문장이
내 하루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은
하나하나 떠오르는데
그것들이
서로 이어져 하루가 되지 않았다.
각각의 조각은 있는데
그 조각들을 엮는 실이
어디선가 끊어진 듯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오늘은 있었다.
그 이상의 설명은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오르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말했다.
“...분석을 계속할까요?”
그 말은
기계의 말이었고,
또한
어디에도 닿지 않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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